독립기념관 탐방기
“우리의 조국이란 우리의 마음이 묶여 있는 곳이다.” 프랑스의 위대한 계몽 사상가 볼테르가 남긴 명언이다. 초등학교 때 교양 사회책에서 이 구절을 처음 발견한 지도 어느덧 몇 년이 흘렀다. 그렇지만 이 문장을 보는 매 순간 나는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희열은 조국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에서 기인한다. 내 나라 대한민국이란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한 여인을 오랫동안 짝사랑하는 남자는 그 여인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기만 해도 몸이 배배 꼬인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조국에 대한 나의 견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래도록 살아갈 굳건한 터전은 나로 하여금 애(愛)라는 감정이 북받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제 목숨 아끼지 않고 투쟁한 독립열사들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느낄 때마다 내 가슴은 시리게 공명한다. 역사 교과서 한 켠에 숭고히 적혀진 그들의 이름은 하나하나 조국의 자랑이자 나라사랑의 상징이다. 아마 독립열사들의 굳센 의지 역시 그 근본은 나와 같은 감정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랑. 이유 없고 조건 없는 사랑이다. 가족, 친구, 연인을 사랑할 때 구체적인 이유를 대기 쉽지 않다. 그저 ‘그 사람들’이니까 사랑한다. 나라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 나라’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수천 년의 한민족 역사를 관통하는 겨레의 정신 역시 애국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본다. 오늘 나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애국의 개념을 잠시 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이곳 독립기념관에서 말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장장 2시간을 달려와 차에서 내리자 신선한 천안 바람이 온몸을 훑으며 반겨주었다. 주변의 푸른 산과 지저귀는 새소리 덕분이었을까. 긴장이 풀리고 편안했다. 산뜻한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 지 10분이 지나자 눈앞에 거대한 조형물이 나타났다. 두 개의 삼각기둥은 마치 꼿꼿이 서 있는 민족의 힘찬 기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 뒤로는 조그마한 다리와 함께 수백 개의 태극기로 이루어진 숲이 보였다. 국경일에나 몇 개 볼 법한 태극기가 끝이 보이지 않도록 세워져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푸르고 붉은 태극 문양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100년 전 일제의 군홧발 아래서 만세삼창을 하던 선조들의 결의는 이 태극기에서 오지 않았을까. 마침내 겨레의 집에 다다랐다. 동양 최대의 기와집이라고도 불리는 웅장한 건물. 넓은 마당을 지나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한민족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마치 위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듯, 수십 개의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잔뜩 기대를 품은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그 기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건물 중앙에서 역동적인 몸짓으로 당장이라도 비상할 것만 같은 불굴의 한국인 상에 한동안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뒤편의 전시관에서는 해설을 들으며 관람했다. 근현대 역사를 시작으로 을사늑약, 강제합병 등을 거쳐 한반도의 한 맺힌 발자취가 천천히 드러났다. 전시관 속에서 각자 제자리를 지키는 풍부한 사료들 앞에서 내 앝은 역사 지식이 그저 부끄러웠다. 관람하면서 독립을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었다. 교과서 속 3·1 운동은 프로젝터 빔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선조들의 몸짓이 되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광복의 기쁨은 스피커를 통해 몇십 년을 뛰어넘어 나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어두운 전시관을 나오자, 새삼스럽게 온몸에 빛이 느껴졌다. 광복이란 마치 빛과도 같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대 속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을 것이다. 수많은 이름 모를 젊음이 그 빛을 좇다 스러졌다. 마침내 나라를 되찾았을 땐, 그 빛이 모두를 밝혀주었다. 애초에 광복의 ‘광’ 역시 ‘빛 광’이 아니던가. 정직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나는 선조들의 나라 잃은 설움과 광복의 희열에 잠시나마 함께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공상과 사념이 뒤섞여 있었지만, 결국 주제는 단 하나였다. 애국심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앞에서 하나가 된다. 평소엔 무관심한 듯 보여도, 국경일마다 성실히 태극기를 달고 월드컵 때 광장에 모이며, 경제 위기에 맞서 너도나도 금가락지를 내놓는다. 이런 한민족에겐 어쩌면 유전자에 나라사랑이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소시민의 애국심이 차곡차곡 쌓여 국가의 기력으로 우뚝 솟는 것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혼란스러울 때마다 우리는 그렇게 대응했다. 독립기념관의 유물과 자료가 이를 명백히 증명한다. 일제의 지독한 핍박과 탄압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은 숱한 열사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뜨거운 교훈을 선사하지 않는가. 애국이란 어렵지 않다. 그저 조국에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내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남을 도우며 성실히 살아가는 삶이 애국이요 나라사랑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생생한 경험이 나에게 남긴 가르침이다. 오늘도 나는 가슴 한 켠에 나라사랑을 아로새긴 채 굳건하고 담담하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