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9-09-27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불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하얀 관광버스가 지나간다. 불투명한 창문 너머로는 죄다 초록색 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인다. 유치원에서 단체로 소풍이라도 온듯하다. 스윽 지나가는 버스 속 높은 좌석 위에서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순수하게 반짝인다. 고개를 내린 앳된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 아마 저 아이들은 지금까지 누군가를 내려다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목을 쭉 뻗고 고개를 올린 채 지냈겠지. 그러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위에 있다는 자각은 그토록 우월한 감정이다. 대부분은 일생 동안 길거리를 걷기만 한다. 그 중 소수는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있는 특권을 얻는다. 이 소수 사이에는 마치 그들 사이의 사소한 우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평생 비행기를 탄 채 내리지 않고 세계를 도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건, 이 수단의 특권이 전혀 고루 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걷는 사람은 평생 걷는다. 비행기를 타면 단 한번도 땅을 밟아보지 않는다. 이런 세상 속 나의 위치는 그저 불안정하기만 하다. 버스 속 저 아이들은 과연 인생 속 어느 수단에 위치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