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9-09-30
9월의 마지막 날이다. 9월은 내게 특별한 달이다. 내 생일이 있는 달.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달. 설익은 단풍잎이 눈에 밟히기 시작하는 달. 여러모로 전환의 달이다. 마음가짐 또한 달라진다. 올해는 특히나 9월 한 달간 배운 교훈이 많다. 몇 년만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근육을 기르고 있다. 우정보다 사랑에 가까운 듯한 관계가 생겼다. 조급한 마음을 매 순간 달래는 중이다. 이 모든 희망과 우수, 고뇌와 깨달음이 한데 모여 나라는 인격체를 완성해나간다. 절제의 미학을 배우는 중이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던가. 반드시 필요한 말만 하되, 내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상황에선 찰나의 고민도 없이 나의 견해를 소명하고자 한다. 인생의 굴곡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에도 익숙해진듯하다. 17년 남짓 살아오며 크나큰 시련이나 환희라고 칭할 사건은 없었다. 다만, 그 누구의 인생도 곧게만 뻗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 역시 오롯이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정진하자. 나라는 사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등산의 한 걸음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걸음 하나가 나를 진리로 이끌어준다.
몇 달만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은 오랜만에 베이스를 쳤다. 주인의 망각에 항변이라도 하듯, 충삼의 악기는 그 위치에서 꼿꼿이 자세를 유지 중이었다. 그런데 웬걸, 케이스의 앞주머니가 열려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새로 산 케이블이 없었다. 필히 누가 마음대로 가져가 쓴 듯하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장비의 중요함에 십분 공감할 것이다. 내 장비를 타인이 무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음악인의 자존심에 깊은 흉터를 긋고 가는 몰지각한 행위이다. 다행히 옆 방에서 금방 찾을 수 있었고, 곧 연주할 불후의 명곡 ‘그대에게’의 도입부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펙터와 앰프에 연결하고 전원을 켜자 웅장한 그르렁 소리가 방 전체에 메아리쳤다. 마치 사자나 호랑이 같은 야생의 맹수가 사냥을 준비하는 듯했다. 베이스의 보관 상태는 훌륭했다. 튜닝도 거의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나의 보물과 몸으로 소통하고 나니 기분이 개운했다.
오늘은 재완이와 경제 논문 공모전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일단은 386세대를 통한 노동시장 분석을 주제로 잡을 것 같다. 논문이란 보면 볼 수록 어려운 것 같다. 대학생과의 격차가 새삼 실감나면서도 요즘 이슈가 되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의 논문 1저자 논쟁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8교시 영미문학이 끝나고 난 뒤 윤승길 쌤과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눴다. 5분도 안됐지만, 내 에세이 인트로를 첨삭받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쌤은 나더러 문장 간의 연결을 더욱 끈끈이 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없애라고 조언하셨다. 단풍나무가 아니라 메타세콰이어처럼 줄기가 단단하고 가지가 적은 에세이를 만들고 하셨다. 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와닿는 조언이었다. 훗날 이 일기를 다시 봤을 때는 에세이 쓰기에 자신감이 붙어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