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인민’

2019년 10월 3일

English

지난 개천절, 평화로워야할 공휴일에 광화문 광장은 엄청난 인파로 가득찼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대구모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 집회에 관해 곳곳에서 상반된 의견이 제기되었다. 시위를 주도한 자유한국당은 ‘민심이 광화문에 집결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 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사실상 ‘한국당 집회’였다며, 조국 수호를 위한 서초동 집회야말로 ‘국민의 집회’라고 언급했다. 뒤통수를 맞대고 있는 양당의 주장이 상반되는 건 당연하다. 다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국민’의 이름을 빌렸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뜻’, ‘국민의 명령’, ‘국민을 대변하여’. 정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뻔한 레파토리다. 분명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일컫는 집단은 유일무이한데 그 뜻은 유이하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정당이라는 지붕 아래 정치를 업으로 삼는 자들이 인용하는 ‘국민’이란 무엇이며 누구란 말인가.

광화문에서 북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평양이 보인다. 이곳에도 우리네 정치인처럼 ‘국민’을 마치 언제든 서랍에서 넣었다 빼는 학용품 정도로 취급하는 작당이 있다. 단지 칭호만 ‘인민’으로 바꼈을 뿐이다. 인민의 뜻으로 정책을 수행하고 비밀리에 반대파를 숙청하며 독재자를 위시한다. 얼마나 인민을 위했으면 국명조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일까. 정작 그 인민은 수백만이 기아에 허덕이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말로만 통일하자면서 툭 하면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남과 북이지만, 꼭 이런 데서만큼은 합이 맞아떨어진다. 불특정 다수의 이름을 빌리고서는 정작 그들의 아우성은 묵살한 채 본인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높으신 분들’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국민의 뜻’이라는 표현을 ‘국민 중에서 나를 위해 언제든 희생할 수 있는 맹목적 지지자의 뜻’으로 바꾸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에서 정치인들의 발언을 접할 때마다 내가 그들이 정의하는 대한민국 국민에 속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제 입맛대로 국민을 소환하는 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어쩌면 우리 ‘국민’은 ‘인민’이 되어가고 있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