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편지 (자작 수필)
“오늘도 와 있네?”
찬바람이 심술궂게 뺨을 간질이는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 두 딸을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 참이었다. 습관처럼 우편함을 확인하자, 단정히 접힌 낯선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역시나 붉은 끈으로 싸매진 보랏빛 편지지였다. 무엇인지도 누구 것인지도 알지 못했지만, 외투 안에 조심히 모신 채 집으로 들어갔다.
의문의 편지가 우편함에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닷새 전부터였다. 분명 지인 중에 이렇게 정성스레 편지를 보낼만한 인물은 없었기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워낙 고풍스러운 멋이 뿜어져 나오는 탓에 한참 동안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잘못 도착한듯하여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았다. 편지지 겉은 생채기 하나 없이 말끔했으니, 발신인이나 수신인이 적혀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개봉해 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봐도 집에 고이 모셔두는 것 외에는 마땅한 도리가 없었다.
그러한 연유로 부엌 탁자 위에 서먹하게 모셔둔 것이다. 그날을 시작으로 매일 아침 우편함에는 어색하면서도 이제는 꽤 친숙한 편지가 나를 반겨주었다. 어느 날 아내가 저녁을 먹으면서 편지에 관해 물어보았다.
“여보, 저 종이들은 뭐야?”
“아 저거 우편함에 있던데, 우리껀 아니라서 그냥 들고 왔어.”
“에이 그러면 주인을 찾아줘야지.”
아내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세상 물정에 등 돌리고 물 흐르듯이 사는 나와 달리, 아내는 구태여 남과 인연을 맺으려 한다. 그렇지만 이번엔 나도 아내의 뜻에 못 이기는 척 따랐다. 가슴 한 켠에 편지의 비범한 외관과 함께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별난 편지의 정체를 소상히 깨닫고 싶었던 무의식의 아우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파트 경비원을 찾아가 셋이 보는 데서 편지 하나를 뜯었다. 편지지 안에는 노르스름하게 빛바랜 종이가 고이 접혀있었다. 살며시 들추어보니 빼곡히 적힌 검은 글씨가 보였다. 사이사이 박혀있는 한문도 꽤 자주 눈에 들어왔다. 가장 위에는 ‘이춘자’라는 이름이 다른 글자들보다도 더욱 정성스레 쓰여 있었다. 주변에 그런 이름을 가진 이를 궁리하던 중, 경비원이 외쳤다.
“어! 이분 309호 사시는 할머닌데.”
우리 집이 310호이니, 옆집 이웃이었다. 사실 이웃이라고는 하지만 이사 올 때 떡 드리러 한 번 찾아간 것 말고는 기어이 찾아갈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경비원의 말을 듣고 나서도 얼굴과 모습이 잘 연상되지 않자, 나 스스로가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지금까지 도착한 편지를 조심스레 싸서 옆집 문을 두드렸다. “나갑니다”라는 그 힘겹고 근엄한 목소리만으로도 화자의 연륜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말이 들려오고 나서 한참 뒤에야 문이 스르르 열렸다. 왜소한 백발의 노인이 눈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편지지에서 묻어나왔던 예스러운 미(美)와 기(氣)가 주변을 감싸면서 마치 노인이 그 편지의 주인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경비원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노인이 입을 열었고 그제야 우리는 이 오묘한 편지지의 정체를 깨우칠 수 있었다.
아흔 살이 넘은 노인에게는 자식이 여럿 있었으나, 전부 먼저 세상을 뜨고 이제 남은 핏줄이라고는 아들 하나뿐이라고 한다. 한데 그 아들마저도 일흔을 바라보고 있어 서로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노인이 큰 병을 얻어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아들은 노모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매일 같이 편지를 써서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편지가 선생님 댁으로 갔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마 아들놈이 주소를 착각한듯싶군요.”
이렇게 말하는 노인이었다.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된다는 노인에게, 아들에 관해 묻는 경비원을 뒤로하고 나와 아내는 먼저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누워있자 여러 심경이 돋아났다.
이제 갓 사십을 넘은 나는 나름 인생을 충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주변 사람에게는 너무 매정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축의금을 내거나 명절 선물을 보낼 때도 항상 ‘여백의 미’를 추구했다. 독실한 신자도 아닌 주제에 화려한 겉치장을 지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충실히 따랐달까.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내 마음속 드넓은 들판도 메마르게 굳어갔던 것 같다.
아들이 노모를 떠올리며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간 정성이 담긴 편지. 그 편지를 받는 노인의 기분이 어땠을지 부족한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툭하면 ‘e-‘자가 앞에 붙어 모든 것을 기술로 귀결시키는 근자에 그런 아날로그적 감상을 향유하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그런데도 편지를 주고받는 노인과 아들에게 경외심마저 느껴질 따름이었다. 만약 그 편지가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주변에 무관심한 채로 살아갔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연히 내게 도착한 편지는 내가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편지를 바라보던 노인의 사랑 담긴 생생한 눈빛만은 잊지 못한다. 나에게 정성 담긴 편지를 선물해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가능성이 큰 그 노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