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인턴 이틀차 후기
인턴_이틀차_후기.
. 오늘과 어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테헤란로로 출근하면서 정말 많은 경험을 목격하고 축적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2년 반 동안 민사에 있으면서 이곳에서만 가능한 귀중한 자산을 얻었지만, 학교에서의 시간과 사회에서의 시간에서 느끼는 점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확연히 다르다. 새로운 회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행위 자체가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기에 특별했으며, 그 사람들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선망한 분야의 최전선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물론 이틀밖에 안되는 기간 동안 도대체 해봤자 뭘 그리 많이 느꼈겠냐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이 한 달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시기라고 느껴졌다. . 그럼에도 내가 테헤란로 한가운데의 빌딩 6층에 앉아서 무슨 업무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정리하고 싶다. 간략하게 어제와 오늘 한 업무를 말해보자면, 어제는 자리와 업무를 안내받고 우리 부서에 계신 여성분(P라 하자)과 점심을 먹으면서 한 달 동안의 로드맵이라던지 개인적인 이야기 등을 나눴다. P 본인도 청심국제고에서 유학반이었다고 하셔서 미국 금융계쪽 관련해서 여러 가지 유익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 오후에는 옆자리에 앉은 우리 부서 남성분(J)가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보험 관련 신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시면서, 나에게 보험업법이나 해외 사례 등의 리서치를 부탁하시면서 함께 해보자고 하셨다. 그런 중요한 일을 나 같은 고등학생한테 일부라도 믿고 맡긴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 오늘은 출근해서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잠시 뻘쭘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예전에 어떤 금융인이 쓴 책에서 '월스트리트에서 인턴십을 할 땐 아무도 본인을 챙겨주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여기저기 스캔을 좀 하다가 어제 얘기한 J에게 또 얘기를 걸어서 자동차 관련해서 또 리서치할 소스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걸 딱 시작하려고 하는데 J가 나에게 7월 동안 우리 회사 서비스를 통해 실행된 대출의 금리와 금액 raw data를 줄테니 최댓값, 최소값, 평균, 중앙값, 분포도 등(앱통,,)을 산출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 컴퓨터로 신나게 하다보니 점심시간이 어느새 다가왔다. 원래 어제 대표님들과 식사를 했어야 되는데 시간이 안되서 오늘 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았고, 내가 밴드에서 베이스 치는 썰을 풀다보니까 어느새 금방 갔다. 오후에 와서는 아까 J가 맡긴 리서치를 하고 아이디어를 짰다. 마침 오늘이 월말일이어서 달마다 진행하는 (뒤에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전사보고회 느낌의 타운홀 미팅이라는 걸 2시간 동안 진행했다. 대표님이 치킨도 시켜주셔서 맛있게 먹다가 퇴근했다. . 거창하게 써놓긴 했지만, 이 업무와 활동들은 회사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장 시간이 남는 내가 해야 할 일에 가깝다) 나는 내가 어떤 업무를 했느냐보다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가지 느낀 점을 공유하고 싶다. .
. 1. '스타트업,' '시장,' '경쟁'과 같은 단어 하나하나엔 수많은 인재들의 고뇌와 영감, 실패와 성공이 담겨있다. 내가 일하는 이 회사는 금융 영역의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규제가 심한 금융 관련 혁신 시장에서 몇 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경쟁력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나름 회사 아이템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회사 전망이 마냥 밝아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라는 곳에 직접 와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가며 느껴보니, 이곳뿐만 아니라 시장이라는 곳은 정말 가혹하고 냉정한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회사 직원들의 관심은 부서에 따라 보통 '어떻게 하면 사업을 개선하고 확장하지(POG 부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구현하지(기술개발본부),'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욱 만족할 수 있을까(커뮤니케이션본부)'로 나뉘어지는데, 이 세 관심사 모두 결국 '회사의 생존'이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즉, 각자 자기 업무만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업무가 전부 전사적인 목적의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쟁, 시장 분석, 비전과 가치가 모두 융합된 산물이 바로 오늘 진행한 타운홀 미팅이었다. 입사 이틀만에 이 회사의 정기 행사를 직접 보게 된 것은 매우 큰 행운이었다. 회사의 전체적인 지향점부터 시작해서 각 조직의 역할과 비전, 그리고 사내 분위기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시간에 걸친 타운홀 미팅이 끝나자, 나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나야 POG 부서에 속해있으니 우리 부서 사람들하고만 이야기할 기회밖에 없었지만, 다른 부서 직원들이 그렇게까지나 심오한 업무를 하고있는지 몰랐다. 특히 마케팅부서의 발표가 정말 인상깊었는데, 마케팅하면 광고밖에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마케팅의 세계가 그렇게나 깊은지 몰랐다. 내가 아는 지식은 정말 얕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두 분이 한 발표도 인상 깊었는데, 회사의 비전과 미래를 제시하며 전직원의 사기를 진작하는 모습이 CEO의 자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 퇴근해서 횡단보도를 기다리는데, 높은 빌딩들 중 하나에 붙어있는 전광판에 써진 긴 글 중에 유독 '스타트업'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놀라운 것은, 어제 출근하기 전과 오늘 퇴근한 뒤에 그 단어가 주는 의미가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그저 '작은 기업' 정도로만 생각했던 스타트업이, 막상 경험해보니 이렇게나 뛰어난 인재들이 협업해서 이 가혹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깊은 분석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을 투입하는지 느끼게 된 듯하다. 그래서 첫 번째로 느낀 점은 바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면을 보게 된 것'이다. . 2. 세상은 professional을 원한다. 출근 첫 날, J가 대표님이 쓴 글을 하나 공유해주셔서 읽었다. 그 내용인 즉슨, 우리 회사는 professional한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Professional한 사람이란 학벌이 좋거나 역량이 어마무시한 사람이 아니라,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이해하고 성장을 철저하게 준비할 마인드셋이 갖춰진 사람이라는 정의였다. 실제로 이틀 동안 내가 본 이 회사의 사람들은 정확히 'professional'이라는 인식이 들었다. 사적으로 보기엔 정말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특히 기술개발부서에서 iOS 담당하시는 분은 첫 날 하와이안 셔츠에 슬리퍼를 신고 계시길래 저래도 되나 싶었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대부분이 고학력+인정 받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에게서 내가 느꼈던 강렬한 'professional'의 느낌은 학력과 능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는 열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회사의 비전을 녹여내겠다는 다짐이 한 데 모여 그러한 느낌을 형성한 듯 하다. 이런 사람들만 모인 회사 오피스이니 당연하게도 공기부터가 달랐다. 사실 오늘 점심 먹을 때도 다른 여자 대표님이 나에게 '요즘 고급 인력을 얻는 게 쉽지 않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과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하셨다. 정말 동감하는 말이었다. 나는 어쨌든 의사나 판검사 같은 전문직이 될 가능성은 이젠 제로고, 앞으로 거의 평생 누군가에게 고용당하거나, 창업을 한다손 쳐도 누군가의 지원이나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사람을 상대해서 사람의 신뢰를 얻는 일'을 해야한다. 따라서, 나를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고용하고 싶은 사람,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인재로 생각하게 하려면, 바로 그 professional 정신이 필요하다. 그저 현상 유지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동료와 소통하며 회사의 성장을 고뇌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두 번째로 느낀 점은 'professional이 되자'였다. . 3. 성장이 원동력인 장소는 활기로 가득차다. 회사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다. 학교와 기업이라는 공간은 거의 정반대에 위치해있겠지만, 내가 지금 머무르는 공동체는 어쨌든 민사라는 학교이므로, 부득이하게 자꾸 민사와 이 회사를 비교하게 된다. 민사라는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배움'을 목적으로 한다. 수업을 통해 지식을 얻고, 생활을 통해 대인관계와 자기관리 능력을 키운다. 인간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 소양과 능력을 배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배움과 성장은 다르다. 물론 배워야 성장하고, 성장을 위해선 배움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민사에서 나는 항상 무언가를 선생님 혹은 친구들에게서 얻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항상 배운 것에 대한 '능동적 적용'에 목말라있었다. 그 '적용'이 가장 활발하게 실현되는 장소가 바로 스타트업 아닐까 싶다. 회사에 뭘 배우러 가진 않기 때문이다. (돈까지 받는데 그런 마인드면 도둑놈이다.) 오히려 나든 기존 직원들이든 자기가 속한 회사라는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걸 활용하는 조직이 바로 이곳이다. 즉, 이곳에선 궁극적 목표가 '성장'이다. 그리고 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만으로도 공동체는 변화한다. 실제로 이틀 동안 내가 자리에 앉아서 주변 직원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을 때,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바로 '그래서 이게 우리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데'였다.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기능 하나나 디자인 한 개를 바꿀 때도 그러한 성장지향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고객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궁극적으로는 회사와 사업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 그게 바로 지금까지 내가 있었던 민사와는 다른 이 공동체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특징은 즉시 분위기에 반영되는 듯하다. 물론 성장지향적 마인드만 갖고 산다면 피곤하겠지만, 바로 그 마인드가 직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업무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된다. 즉, 오피스 전체가 그런 분위기에 있다보니 이제 입사한지 이틀밖에 안된 신입인 나조차 ‘이 회사의 성장을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회사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조금 특별한 공동체이고,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만큼, 기업에게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내가 세 번째로 느낀 점은 ‘성장을 목표로 발전하는 공동체는 활기치다’는 것이다. . 4. 지식의 축적보다 더욱 갚진 것이 존재한다. 이 회사에서 얻은 내 배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야 한정되어있고, 그렇다고 내가 회사의 목표나 비전을 설정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니, 결국 주변 직원들을 보면서 배우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회사의 직원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감탄한 점은 무한한 지식도, 화려한 인맥도 아니라 바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었다. 아무래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평상시에도 나긋나긋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한 태도와 자세가 몸에 배어있다. 특히, 부서 특성상 외부 관계자들과 미팅을 자주 해야하는 우리 부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J도 CS(Customer Service) 담당인데, 고객들에게 보내는 메일이라던가 컴플레인을 대처하는 능력을 보면 정말 수준급이다. 그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직원과 직원 간의 소통이었다. 오늘 점심쯤 개발자 두 분이 목소리를 조금 크게 내시면서 얘기하시길래 나는 싸우는 줄 알고 걱정스럽게 쳐다봤는데, 나만 걱정하는 듯 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 화법이 일반적으로 싸우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단 자신의 요지를 전달한 후 소통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 핵심을 뽑아내서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그런 식의 노련한 화법은 민사에서 들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즉, 업무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트러블을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전문가답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풀어나가는 그 소통 방식이 나는 정말 부러웠다. 물론 이 업계에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터득하겠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실제로 보고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얻은 교훈은 ‘단순 지식보다 갚진 것이 바로 소통의 능력이다’라는 점이다. . 쓰다보니 너무 길어진 듯하다. 사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기보단 그저 내가 지난 이틀 간 받은 충격에 가까운 깨달음과 설렘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도 난 누가 됐든 간에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자 목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나 나의 주변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그러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은 생기기 마련이고, 거기서 통찰을 얻어내는 것은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