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읽고 쓰는 행위가 가진 본질적 의미, 왜 인간은 평생 읽고 써야 하며 그 유익함은 무엇인지에 대해 통찰 깊게 탐구한 책이다.
여러 담론이 나오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에로스와 로고스'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나타내는 에로스와 지적, 이성적 욕망인 로고스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 둘은 이분법적이 아닌 상호보완적 개념이라 말한다. 처음엔 에로스적 욕망뿐인 인간이 어느 순간 필연적으로 삶의 의미와 우주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면서 로고스적 욕망 또한 발현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읽고 쓴다는 것이다. 즉, 읽고 쓰는 행위는 그저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 기저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필연적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로고스적 깨달음이 다시금 에로스적 환희로 이어지며 두 개념 간 상호보완적 관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명확한 설명을 위해 에로스와 로고스라는 개념을 차용했지만, 쉽게 말하자면 인간은 배우고 알아가기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공자 <논어>의 제일 첫 구절인 '학이시습'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며 나 역시 왜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 마음속에서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 왜 밤새 놀고 먹고 마셔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으며 무릎을 탁 쳤다. 앎의 욕구란 의식주의 욕구만큼이나 강력했던 것이었다. 지엽적인 쾌락이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환희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였던 것이다. 에로스와 로고스의 개념을 습득하자 삶의 많은 부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로고스를 인간 본연의 욕구로 설명한 뒤, 저자는 읽고 쓰는 행위 자체에 더욱 집중한다. 읽고 쓰는 것이 알고자 하는 본능과 과연 어떻게 연계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다시 '아'와 '타'의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내면을 향하는 '아'의 방향 혹은 외면을 향하는 '타'의 뱡항을 갖고 있다. 때문에 어떠한 행위든 아 또는 타, 혹은 둘다의 방향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읽는다는 것은 우주 속 존재로서 나 자신을 인지하는 '아'적 행위고, 쓴다는 것은 이를 바탕으로 우주 속에 나를 각인하는 '타'적 행위다. 달리 말하면 '아'적 배움과 '타'적 관계, 이 두 가지로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명쾌한 설명이자 깨달음이다. 항상 인간 삶의 본질을 궁금해했던 내겐 이러한 근본적인 담론이 정말 흥미로웠다.
이후 2부에서 저자는 글쓰기의 방법론을 설명한다. 1부보단 철학적 깊이는 떨어지지만 여러 재밌는 얘기들이 나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박지원의 <연암집>을 인용하며 훌륭한 글이란 화려하고 어려운 글이 아니라 담백하고 쉬운 글이라는 주장은 나 역시 그보다 더 동의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글을 잘 쓰고 싶어 온갖 글쓰기 책을 찾아보며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던 나의 답 역시 똑같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이되 간결한, 'precise and concise'한 글이 내가 지향하는 글이다.
그외에도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개념이나 담론과 유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 신기했다.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곧 구원이다'라는 문장은 이전부터 내가 중요시 여겼던 메타인지의 개념이었고, '지혜는 명령할 수 없다'는 스피노자의 말은 <싯다르타>에서 읽었던 '지혜는 전달될 수 없다'라는 말과 거의 똑같았다. 요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느끼는 바인데, 무수히 많은 책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어쩌면 근본적으로 몇가지 담론과 주장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결국 하나의 길로 모이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읽고 쓰는 행위가 다른 행위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능에 내재된 행위이기에, 내가 먹고 자며 살아가는 것처럼, 읽고 쓰는 행위 역시 평생에 걸쳐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그 행위를 바탕으로 내 로고스적 열망을 충족하고, '관계와 배움'이라는 인생의 두 근원적 요소를 풍족하게 가꾸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