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소용돌이
하늘의 뜻, 천의가 있을까?
내가 어찌하지 않더라도 운명이 소용돌이처럼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
분명 리쿠르팅이 끝났던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전부 계획대로였는데
딱 1년 뒤인 지금은 어찌 이렇게 달라졌단 말인가
그전에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나?
2015년 KMO 실패 이후, 과고/영재고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던 내가 달라졌었다.
그때 기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여전히 관념적으론 과고가 내 머릿속 목표로 남아있지만, 더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그 느낌.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엄마에게 과고 안갈래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찾아온 게 민사고였지.
그 이후로 오랫동안 그런 느낌은 없었다. 모든 게 계획한대로 됐으니까. 그러다가 작년 여름, 하이퍼노트에서 오랜만에 그 기분을 맛봤다. 여름 동안 서서히 망가져간 나의 정신. 결국 마지막 열흘 정도는 아예 그들과 말할 기분도 아니었지. 뭐 어떤 계기가 있어 그리 된 게 아니라 그렇게 됐다 그냥. 그러고선 떠나던 날, 내 생일이 되어가던 그 밤, 그들과 얘기하면서 격앙되는 분위기 속, 처음엔 '그래도 어찌저찌 해결이 되겠구나' 싶던 내 마음이 점차 '아 이거 정말 난 떠나겠구나'로 바뀌던 그 순간. 마침내 결정이 내려졌(혹은 내렸)을 때, 삶의 기울기가 급격히 바뀌는 그 기분. 실감이 안 났다. 아니, 그 이후로도 한번도 실감이 난 순간은 없었다. 그저 삶이 나를 앞서서 변했을 뿐. 나는 그저 급급히 그 변화를 좇는 것이었다.
그 직후 내 방에서 덕행이와 운명에 대해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순리. 모든 게 순리대로 간다고 했었지. 기구하다. 떠나려던 덕행이는 내가 막아서 남고, 정작 생각 없던 나는 갑자기 떠나고, 그럼에도 덕행이 역시 한 달 뒤에 나왔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정말?
그리고 그 이후로 퀀트에 꽂혔지. 왤까? 이제 뱅킹, 더 나아가 모든 종류의 회삿일과 사람 상대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 thought process는 추후 기술.
그리고 최근 들어, 마침내 오늘, 그 운명의 소용돌이를 느꼈다. 분명 평소와 같은 날이었어야 하는 건데, (1) summer 2027에 미국 인턴십을 못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2) Evolutionary Strategies와 CollectiveEvolve project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깨달았다. (3) Xuting의 랩에 붙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연구의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 않은가? 특히 최근에 일련의 사건 --동관 선배를 만나 리서치에 대한 매력을 더 느낀 것이나, 리서치야말로 ai 시대에 살아남을, high agency job이다 라는 thesis--들이 너무나 정렬되어있지 않는가?
어쩌면 ES가 내 삶 자체일 수도 -- 운명을 똑바로 볼 수는 없으나 운명의 흔적을 (소의 발자국?) 느끼고 따라갈 수는 있다. 운명은 움켜쥐는 자의 것인가? 운명은 흐름에 몸을 맡기는 자의 것인가? 나의 주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