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016 - 01.2018
"조금 더 크게 꿈꾸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돼, 자기야."
— 임스, 인셉션
금융을 꿈꾸다 보니 미국을 목표를 삼게 됨.
거기서부터 reverse engineering. 미국 금융권 가려면? 미국 대학 가야함. 미국 대학 가려면? 한국에서 국제반 있는 대학 가야함. 국제학교는 외국 거주 경험 없어서 갈 수 없었고 (학비도 넘 비쌌음), 그럼 국제반 있는 몇몇 자사고로 좁혀짐.
그렇게 유학을 꿈꾸게 됐고, 민사고를 꿈꾸게 됨.
이 모든게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 사이에 일어남.
민사고 1월 설명회
사실 왜 하필 민사고를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게 가장 끌려서?
민사고 웹사이트를 자주 들어갔던 기억은 난다.
토플 준비, 파인만, 3학년 때 민사 준비. 물리도 재밌었음. 중학교 수준 물리였지만 재밌었음.
KMO로 단련된 나는 수학 하나로는 실력이 매우 뛰어난 학생이었음. 영어가 좀 애먹었음. 영어를 원체 싫어했음.
민사 준비는 특별히 기억할 만함. 사춘기 이후 비로소 진정으로 뜻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 느낌. KMS, KWS, 등등
웃기게도 실제 면접에선 영어에서 말이 술술 나오고 수학은 중간에 막혔음. 목표는 수학에서 A+, 영어에서 C만 받지 말자였는데, 거의 정반대로 느껴짐. 망했다고 생각했음.
중2 때 미국으로 가족여행. 아이비리그 학교들을 투어하는 전형적인 패키지 여행. 인생 첫 미국. 동기부여는 아니지만 꿈에 대한 확신을 굳혀줬음. 부모님께 감사.
중학교 생활: - 중학교 때 영어 갖고 따지고 대들었던 거 - 별로 안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많았음. 중2 때 담임 도덕 선생님, 중2 때 영어 선생님, 중3 때 기술가정 선생님. 증3 때 영어 선생님. 중1 때 체육 선생님 - 내가 싫어하던 선생님 유형은 강압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걸 시키는 사람. 좋아하던 분은 항상 무언가를 왜 해야하는지 알려주신 분. - 여전히 모범생이었으나 규정 밖으로 사고하던 존재 - 최종적으로 All A였지만 300명 중 전교 15등이었나 그랬음. 애초에 신경 안 썼지만, 생각보다 낮게 나왔던 기억 있음. 점수에 무슨 학생회장 하고 이런 게 가산점으로 들어갔었음. 그때도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이런 걸 포함한다는 게 웃겼음. -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2병이 쎄게 오긴 함. 반항 정신이 이때부터 길러짐. 부조리함에 타협하지 않음.
중3 민사고 붙고 스마트폰하다가 두번이나 뺏겨서 혼날 때 담임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앞으로 너는 큰 사람이 될텐데, 그럴수록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다? 피터 파커마냥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동시에 '엘리트'로 인정받은 거 같아 혼나면서도 기분 좋았음.